젊었고 또 무모했던 그때 그 시절의 지리산 종주기 올려봅니다.
(사진은 필카로 찍은걸....최근에 스캐너로 스캔한 것인데 당시 카메라 다룰줄도 몰랐고
좋은 카메라도 아니었기에 사진 자체가 별로라 스캔버전도 영 별로네요)
1996년 10월, 전역을 4개월 앞둔 26개월차 공군병장 두 녀석, 열흘짜리 정기휴가를 나왔습니다.
휴가 나오기 전, 같이 휴가를 나오는 동기녀석과 작당모의를 하다 어디서 들어는 본듯한
지리산 종주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나이또래가 다들 그렇듯 둘다 등산은 거의 해보지 못한 초짜였습니다.
저는 치악산 올라본게 1000m 급 등산의 전부일 정도로 등산에 문외한이었습니다.
# 화엄사 입구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도 앞에서...
수원에서 집으로 내려가 하룻밤 보내고 이튿날 배낭을 꾸려 동기가 사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금같으면야 지리산 종주를 떠난다고 하면 그 전날 산행준비로 바빴을테지만
왕초보산꾼은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천하태평,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동기녀석 집에서 잠이 듭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11시. 헐~ 그냥 대충 배낭에 쌀이랑 김치 조금, 통조림 몇개 넣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예매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다행히 오후 1시 40분 구례로 가는 무궁화호 표를 구해 특실에 올랐습니다.
수원역을 지나 얼마 안가 근무하던 부대 내부로 기차가 잠깐 통과하는데 멀리 보이는 내무반을 보며 동기녀석 왈..
'*뺑이쳐라 이넘들아~ 나는 놀러간다'
외치며 낄낄댑니다. 나중에 누가 더 뺑이치게 되는지 모르고 말입니다.
대전을 거쳐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 그제서야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조금은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뭘 어찌 해야 할지 계산이 안서는 상황. 그리고 처음 와보는 낯선 동네, 낯선 전라도 사투리, 괜히 주눅듭니다.
우선 구례구역에서 시내버를 타고 구례로 갑니다. 일단 구례까진 오긴 왔는데 지리산은 어떻게 가는거지?
그런데 모를땐 무작정 파출소로 가면 된다고 동기녀석이 말합니다.
초보산꾼들, 무작정 파출소로 쳐(?)들어갑니다. 한밤중 두명의 초보산꾼의 방문에 약간 놀란 표정의 경찰관.
하지만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는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지리산 종주란 말이지 ~~~~~~~~~~~다.'
그리곤 직접 화엄사 입구 민박집에 전화를 해서 예약까지 해주시네요.
'여기 우리 동생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좀 싸게 해주세요~'
등산객으로 위장한 두명의 공군병장, 눈물이 나도록 고맙습니다.
다시 구례를 찾을 때 꼭 그 경찰관 아저씨를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무한 감사인사를 건네고 화엄사 입구 민박촌에 도착, 만오천냥이란 저렴한 가격에 독채 한채를 전부 빌립나다.
뚝딱 간단히 차려낸 저녁식사를 하며 주린 배를 채우고나서 샤워를 한뒤
민박집에서 나와 개폼 잡고 사진을 찍으며 근처를 돌아다닙니다.
# 화엄사 앞 민박지구의 무슨 이정표 앞인데..
다음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화엄사 계곡으로 올라가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만 거대한 지리산의 산세에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잔뜩 주눅이 들어버립니다. 고로 계획을 수정, 화엄사 대신 성삼재를
출발지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한시간에 한대 있는 성삼재행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고는
지나가는 트럭, 경운기를 차례로 얻어타고 어찌어찌 성삼재에 이르는 도로 입구까지는 도착합니다.
한시간을 기다려 성삼재행 버스를 타야하나 싶은 순간, 도로변에 주차해 있는 관광버스에 동기녀석이 다가갑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가득찬 관광버스 기사님께 성삼재까지 태워주십사 부탁드려봅니다.
기사아저씨 曰
'할머니들한테 물어보고 괜찮다하시면 타~'
물론 할머니들은 젊은 총각들 탄다고 좋아하십니다.
대신 앞에 나가 노래 부르며 재롱을 부려야 한답니다. 어느 할머니는 제 손을 꼭 붙잡고는 자기 손녀가 서울에 있는데
산에 가지 말고 이 버스 타고 같이 서울 올라가서 자기 손녀랑 사귀어보는게 어떻냐 물어보십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그때 같이 서울 따라 올라갔으면 인생이 달라졌을라나?
# 시암재 휴게소에서.
관광버스는 시암재 휴게소에 잠시 정차합니다.
우와~ 지리산 단풍이, 아니 그냥 산의 단풍이라는게 이렇게 아름다운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리산 산세의 웅장함에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우와~ 우와~~~~~'
# 시암재 휴게소에서. 우측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아마도 만복대겠지요.
# 시암재 휴게소에서. 청바지에 니트라. 지금 기준으로 보니 가장 삼가해야할 등산복세트구만요.
# 시암재 휴게소에서. 깎새(이발병) 김일병이 열외병장 휴가나간다고 정성스레 깎아준 머리 맘에 들었고..
# 웅장한 산세, 깊은 계곡, 지금껏 보지 못했던 풍경에 감탄사만 나옵니다.
이런 맛에 산에 다니는구나 내 인생 처음으로 깨닫게 된 시점이리라.
# 서울로 같이 가자던 할머니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성삼재 휴게소를 출발, 노고단 산장으로 향하며
초짜들의 지리산 종주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 노고단 대피소 앞에서, 개폼잡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신발 신은채로 올라갔네요. 반성합니다.
# 지금은 개방중인 노고단 정상 일대가 완전히 출입금지로 묶였던 시절, 노고단 고개에서 사진 한장 남겨봅니다.
주머니에 넣어둔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린것도 몰랐던만큼 카메라,사진에도 역시나 무지했었지요..
# 노고단까지 가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노고단에 도착하니 좌전방으로 거대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반야봉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엔 반야봉이 천왕봉인줄 알았습니다. 그정도로 초짜였습니다.
반야봉 우측 뒤로는 저 멀리까지 능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멀리, 아주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설마 저게 천왕봉은 아니겠지?'
맞아요. 그 봉우리가 지리산 천왕봉이었습니다.
너무나 몰랐고 부족했습니다. 지도 한장 챙겨오지 못한 초보들.
산아래 기념품점에서 산 손수건에 그러젼 지리산 개념도(?)가 우리가 준비한 지도의 전부였습니다.
그냥 할머니들 따라 서울 올라갈걸 그랬나?
그래도 동기녀석의 의지는 강했습니다. '출발'을 외칩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예든동간에 가는데까지 가보자~
# 노고단 고개를 출발하며~
# 여긴 어딜까?
# 여긴 돼지평전 부근인것 같기도 하고..
# 출발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너무나 힘이 듭니다. 등산이란게 이렇게 힘든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당시엔 행동식의 개념도 없었지요. 그저 쌀과 김치, 통조림 몇개가 우리가 가진 식량의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배가 고파 힘이 딸려도 뭐라도 먹을게 없습니다. 산에선 먹는만큼 간다는걸 미처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의 목표지점? 그런것도 없습니다. 그냥 가는데까지 가는겁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했습니다.
손수건을 보니 뱀사골 산장에서 멈추어야 할것 같았습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예약제는 아니었기에
숙박엔 문제 없었던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수 있었지요.
암튼 첫날 진행한 구간이 성삼재에서 뱀사골산장이라니, 지금 기준으로는 '기어갔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요즘같아선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첫날엔 못가도 세석,
좀 일찍 출발하면 장터목까지도 충분히 갈 시간인데 말입니다.
둘다 말년병장인데다 보직도 총무병, 작전병으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보직이다보니
강인한 군인아저씨는 간데없고 저질체력에 허덕이는 공군병장 두녀석이 지리산 능선길에서 고행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다 너무 배가 고파와 반야봉 갈림길인 노루목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뭐라도 먹어야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배낭을 뒤져보지만 행동식으로 먹을거라곤 '스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그 차갑고 짜디짠 스팸을 걸신들린마냥 허겁지겁 순식간에 먹어치웁니다.
# 노루목 고개에서. 차가운 스팸을 허겁지겁 먹은 직후에 찍은 사진입니다. 동기녀석의 안색이 좋지 않네요.
그렇게 허겁지겁 찬 스팸으로 배를 채우고는 노루목 고개를 출발한지 2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동기녀석이 잠깐 쉬고 싶다고 합니다. 쉽니다. 그런데 앉고 싶답니다.
배낭을 벗고 앉습니다. 그러더니 눕고 싶답니다. 응? 그제서야 그녀석의 안색을 살펴보니
허걱? 이녀석의 안색이 너무나 창백합니다. 얼굴을 만져보니 차갑네요.
손을 만져보니 차갑네요. 이녀석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뭐야? 야~ 왜그래?'
한번 누워버린 동기녀석은 일어날 생각을 안합니다.
'추워~ 추워~'
불과 몇분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이 헛소리를 내뱉더니 서서히 의식을 잃어갑니다.아무리 흔들어도 꼼짝을 안합니다.
미안하지만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쳐도 깨어나질 않네요.마침 지나가는 몇몇분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기에 여차저차한 상황이라
말씀드리니먼저 내려가서 뱀사골 산장에 상황을 알리겠다 하시네요. 말씀만이라도 고마웠습니다.그분들이 떠나고 계속해서
동기녀석을 일으켜세우려하지만 요지부동.아... 이렇게 사람이 가는건가 싶은 불길한 생각이 엄습합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이젠 더이상 지나가는 등산객도 없습니다.이녀석을 업어서 뱀사골산장까지 가야하나?
하지만 이녀석 덩치가 저보다 조금 더 큽니다. 게다가 의식없는 사람을 옮기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예전에 경험해본적이
있어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입니다눈물이 날것 같은 상황에서 어디선가 조폭같이 덩치가 우람한 예닐곱명의 등산객들이
지나가며 무슨일이냐 묻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이 녀석이 꼼짝도 안한다~ 좀 도와주세요'
리더인듯한 분이 들것을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뚝딱뚝딱 주변의 나무를 잘라 즉석에서 들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곤 네분이서 이 녀석을 들것에 실어 운반하기 시작합니다. 또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좀전의 암담함의 눈물이 아니라 고마움의 눈물입니다.그분들이 들것으로 동기녀석을 나르는 동안
저는 그분들의 배낭을 들고 쫓아갑니다.와~ 근데 배낭무게가 엄청납니다. 뭘 이렇게 많이들 가지고 다니시는지..
그래도 힘든 내색을 할수는 없었습니다. 낑낑대며 제 배낭 포함 배낭 세개를 들고 화개재로 내려가는데
아래쪽에서 거센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고 계신 뱀사골 산장지기와 만납니다.
좀전에 내려오신 등산객이 조난신고를 하셨다고 하네요.
초보산꾼, 여러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습니다.
화개재에 이를 무렵, 아~ 동기녀석의 안경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쓰러진 자리 바로 옆 바위 위에
올려놓은게 생각납니다. 젠장~~~~~ 다시 노루목까지 되돌아가서 안경을 찾아 내려오니 어느새 해는 서산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얼마 뒤 우리 초보산꾼을 살려주신 전남대체육학과 팀과 합류, 뱀사골산장에 안전하게 도착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원래 그분들은 연하천 산장까지 가려다가 저희를 도와주느라 뱀사골산장에서
1박을 하게 되셨지요. 지금 어느 하늘아래 살고계신지 모르겠지만 생명의 은인인 그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 올립니다.
# 안경 찾으러 다시 노루목까지 뛰어올라온 김에 사진 한장 남겨 보았지요.
동기녀석은 마침 뱀사골 산장에 와있는 침을 잘 놓는 어느 아주머니의 손에 맡겨져 온몸을 바늘로 딴 뒤에야..
트림 한번 내뱉더니 정신을 차립니다.....노루목에서 급하게 먹은 스팸에 급체한 거랍니다...
정신을 차리니 배가 고파지네요...뱀사골 산장에서...빈약한 우리의 저녁식사가 차려집니다...
그걸 본 아주머니들이....산에 올땐 무엇보다도 먹을걸 많이 가져와야 한다며 직접 끓인 된장국과
밥을 가져다 주십니다....눈물이 날것 같습니다...
# 뱀사골 산장에서...우리의 빈약한 저녁식사를 차리며...
다음날 아침....너의 이 몸상태론 천왕봉까진 무리이니 뱀사골로 하산하자는 나의 주장과...
끝까지 가겠다는 동기녀석의 주장으로 티격태격....결국...동기녀석의 주장대로 끝까지 가기로 합니다...
# 셋째날...아침 7시 뱀사골 산장을 출발하며...셋째날에...뱀사골에서 출발합니다...초보산꾼들...
동기녀석 많이 힘들어합니다....하지만 저는 냉정하게 앞서 걷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그땐...니가 가자고 한 산행이니까...내가 가는 속도에 맞춰 쫓아오라...이런 심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 명선봉이랍니다...힘겨운 와중에서도 이정표에서만큼은 꼭 도장을 찍고 갑니다..
# 안개낀 연하천 산장에 도착합니다...1000원짜리 초코파이 하나씩 사먹습니다...아...꿀맛입니다..꿀맛...
# 시간이 지나고 개스가 걷히며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납니다....지리산의 웅장함에 매료되어갑니다...
# 여긴 또 어디인가요?
# 초보산꾼들....하루종일 부슬부슬 안개비가 흩뿌렸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동기녀석의 몸상태도 좋아져...
여유로운 산행을 하게 됩니다...어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전남대 체육학과 학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석산장까지 그들과의 만남은 계속됩니다...
# 건방진 초보산꾼...이어폰이 보이십니까? ^^
# 계곡마다 넘실대는 운무(?)들....초보산꾼에겐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 이건 또 어느 능선인고?
# 형제봉을 지나고...
명선봉, 연하천을 지나 형제봉을 지나고 깔끔한 벽소령 산장에 도착했습니다...그땐 이게 산장인줄도 몰랐습니다..
산에 왠 별장같은 건물이 있나 싶어 신기해했을뿐이지요...
# 벽소령산장에서....
# 점점 여유가 생겨나며...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습니다...
# 여긴 아마 덕평봉인 듯 싶습니다...그토록 멀게만 보이던 천왕봉과 그 아래 하얀색의 장터목 산장의 모습이 눈앞에 보입니다..
# 그래...이제 다 온거야...힘을 내자구..
# 지리산의 큰 계곡에 압도되었습니다....우와...
# 여긴 또 어디더라...
# 이젠 돌아온 길을 되돌아볼 여유까지 생겼네요...뒤쪽 반야봉...
덕평봉을 지나 선비샘에 이르니....배가 고파 더 이상은 못갈것 같습니다...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식량은..
한끼분의 쌀밖에 없습니다...앞으로 하루 이상을 산에서 버텨야 하는데...큰일입니다...
하지만...그건 나중의 일...지금 당장 배가 너무나 고픕니다....선비샘 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펴고..
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우리의 식량으로는 최후의 만찬을 가집니다.....이제...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아직 세석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 철선봉에서...
# 힘겹게 영신봉에 올랐습니다...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촛대봉...
세석산장의 모습은...동화속에 나오는 산속 오두막집을 연상시킵니다...
초보산꾼에겐...그저 모든것이 새롭고, 신기할뿐입니다....
# 촛대봉을 오르며....셀프타이머샷...
그땐 촛대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왜 그리 길게 보이던지....
몇번을 쉬고서야 겨우 촛대봉에 오릅니다....그때 기억만 가지고 재작년 지리산 종주를 가며 지리산에 첨으로
온다던 동료에게...촛대봉 오르는 길이 무척 힘들거라 말했는데...에게...세석에서 10분만에 훌쩍 오르니...
정말 그때는...초초초초초 슈퍼울트라 초보였나 봅니다....그래도 군발이라 어느 정도 체력은 있을줄
알았는데...역시 말년 병장의 체력은 민간인이 체력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 촛대봉에서...
# 여긴 연하봉인가?
천왕봉에 가까워지면서 안개비가 흩뿌리나 싶더니...그게 아니라 구름이 능선을 넘어가는거였습니다..
능선에 서서 아래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밀려 올라오는 하얀 구름들을 보니 오금이 저리더군요...
그렇게 잡목숲을 지나니 저 앞에.....그렇게 멀게만 보이던 천왕봉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 장터목 산장 직전....왼쪽 제석봉...오른쪽 구름사이로....천왕봉...
드뎌...장터목 산장에 도착했습니다...그때 장터목 산장은 한창 신축공사중이었는데...낡은 구장터목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낸것도
추억거리라 하겠지요..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이젠 먹을일이 걱정이더군요...물론...산장에서 라면 2000원...뭐 이렇게
팔았지만...군바리 월급(우스갯소리로...연봉 12만원에 보너스 400% 인생...)으로는 당장 내일 서울 올라갈 차비도 빠듯한
처지라...함부러 사먹을수도 없고.....쌀은 없고....그냥 된장국을 끓이고 있는데...동기녀석이 잠깐만 기다려 보랍니다...
이녀석이 모할려구 하나...잠시후...그녀석의 손에 깨끗이 씻은 쌀 한 봉지가 들려있었습니다....어디서 난거냐구 했더니...
당시엔 산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텐트중 어느 텐트 앞에 놓쳐진 쌀봉지를 슬쩍 했다는
겁니다....^^ 이래선 안되는데 싶지만....그래도...밥맛 하나 끝내주더군요....허겁지겁 해치우고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터목 산장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배정받아 누워보려 하지만...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어...제대로 눕기조차
힘들 지경인데...거기에 2층엔 대만인지 중국인지...어쨌든 중국말을 쓰는 시끄러운 부류들이 있어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 장터목 산장에서....몸이 좋치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동기녀석....몸져 누웠습니다..
다음날 새벽...다들 천왕봉 일출을 본다고 서둘러 나갑니다...우리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섭니다....그러나...헉....10월의 지리산의 새벽이 그렇게 추운줄
몰랐습니다....어찌나 춥던지...도저히 천왕봉으로 가지 못할것 같아...그냥 포기하려 하는데...
동기녀석은...보러 가자는 겁니다....옷도 부실하고...몸도 안좋은 녀석이 자꾸만 무리수를
던지니 화가납니다....사람들 많은 장터목 산장안에서 티격태격 목소리를 높이며 싸웁니다....
다들 우리를 쳐다봅니다....결국은....'그래 가자' 하고 산장을 나서 제석봉으로 오르려 하는데..
동기녀석도...춥긴 춥나봅니다...그냥 산장으로 들어가 눈을 붙이고...해가 중천에 올라서야..
자리에서 일어납니다....아침을 먹기 위해선 다시 마음을 합심해야 하는바....화해를 하고..
이번엔 또 뭘로 아침을 하나...두리번 거리며 식당안을 서성이는데...마침 어젯밤 그렇게
떠들던 중국여행객들이 라면을 끓여놓고 먹지도 못한채 급한 사정으로 빨리 하산해야 한다며
라면 처리해줄 사람을 찾습니다.....우리가 놓칠 사람들이 아니죠....젤 큰소리로 외칩니다..
'저희가 먹을께요....' 그렇게 우리들의 아침식사는 준비되었습니다...
# 중국여행객들의 떡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후....몇시간전의 다툼에도 불구...
역시 사나이들은.....금방 화해를 합니다....두손을 꼭잡고...舊장터목 대피소 앞에서..저당시 현재 대피소가 한창
공사중이었지요...앞에...공사현장..조금 보이시죠?
# 제석봉으로 향하며....새벽엔 그토록 무시무시하게 보이던 제석봉으로의 오름길이...날이 밝은 다음에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 제석봉에서.....장난삼아 서로 촌스러운 포즈 취해가며 찍었습니다...참 웃기죠?
# 이번 산행에서 제일 맘에 드는 사진입니다....제석봉의 고사목과 하늘의 구름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 제석봉을 지나...비록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태양을 찍어 봅니다...그런데...해는 안보이네요...역광역광역광..
# 천왕봉을 내 손아래에....
# 천왕봉을 향하여...힘겹게 오르고 있습니다...사실은 별로 가파르지 않은 곳인데..일부러 힘든척 연기하고 있습니다..^^
# 지리산 온천 방향으로...
# 반야봉도 보이고...노고단도 보입니다.
# 통천문을 지나..
드뎌.....그렇게도 멀게만 보이던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을 떠나 3박 4일만에 도착한 천왕봉....초보산꾼에겐...감동 그 자체였습니다...'우린 해낸거야...'
천왕봉....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주위 어느 산보다 높은...그야말로 우뚝솟은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주위풍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그렇게 아무말 없이 주위를 둘러봅니다...
# 청서를 찾아보세요...
#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이틀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봅니다.
# 해내고야 말았습니다......주먹을 불끈 쥐어봅니다...
천왕봉에서...어느 이상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자기는 경남 진주에 사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천왕봉에 올라 어느 골짜기에서 사람이 죽을것인지 예언하신다고...
중산리 계곡을 가리키며 조만간 저기서 두명이 죽을거야....이런 말씀도 하시고....
그리고 밤새 어디서 주무셨냐고 하니....천왕봉 바위틈에서 혼자 주무셨다는데....허거....놀라울 따름이다...
할머니로부터 1시간 동안 요상한 얘기(예를 들어 개고기 먹지 말라...사람이 개로 환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를
들으며 천왕봉에서 지체한후...아쉬운 하산을 시작한다....저 아래 중산리가 보이는데...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것 같지는 않아 여유롭게 걷는데....허걱...가도가도 끝이 없는 하산길....
# 바위틈새로 보이는 중봉
# 내가 최고여~~~
# 이바위, 저바위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천왕봉에서...
# 청서를 찾아보세요...
# 중산리 방면으로...
# 우리에게 남은건 생수한통뿐.....
# 수줍은 v
# 수고했다~ 장병장...
# 저~기가..반야봉이지...
# 하산길에 바라본 천왕봉....
중산리로의 하산길은....정말 길었습니다....가도가도 끝이 없는 하산길...마침 일요일이라 천왕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상당히 많더군요...걔중엔 남친 손을 잡고 구두를 신고 오르는 아가씨들도 많으니.....대단하시네...구두신고 천왕봉이라..
우리보다 더 초짜산꾼이 여기 있었구먼....법계사를 지나고 칼바위를 지나 뛰어내려오다 계단에서 한번 구르고 난 뒤엔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단풍이 절정이라 단풍잎 몇개를 따서 배낭속에 넣어두기도 하고..(이 단풍잎 아직도 가지고 있답니다...)
이윽고 중산리 계곡에 들어서니...오호...산도 크니...역시 계곡도 웅장하고....계곡에 내려가 우리들이 어제 저녁 먹다
남은 밥에 고추장 넣어 비벼 그것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하니....세상이 다 내것이로다...
# 법계사에서 바라본 천왕봉...
# 정말 다 왔습니다....한층 거만해진 자세로...
# 매표소를 지나 중산리 주차장으로 내려오며...그래...우린 해냈어....그러나...집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한데...
힘겹게 도착한 중산리 매표소....버스를 타기 위해선 또다시 한참을 걸어내려가야 하니....그래도...지금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저기 어떻게 올라갈래? 나같으면 죽는다 죽어......간발의 차이로 2시 30분차를 놓치고
3시 30분 차를 기다리며 한참을 쉬는데 마침 도착한 어느 두 청년들....지금 올라가서 세석에서 잔다고 하는데....허거걱...
당시 우리들의 생각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어떻게 세석까지 가느냐? 잠은 안 잘꺼냐고 물으니....야간 산행을 한다네요...
요즘에야...야간산행을 밥먹듯 하지만...그당시만 해도...밤에도 산에 간다는 사실 조차 몰랐으니....그들의 일정은 1박 2일만에
지리산종주를 하는 것이었죠...3박 4일만에 지리산 종주에 성공한 우리들에겐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일수밖에...
하지만...지금은...내가 그렇게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으니.....^^
3시 30분차를 타고 진주에 도착하니...동기녀석 서울까지 가는 차비가 모자르네......돈을 더 보태주어 서울로 먼저 보내고 나는
집으로 향해 가는데...진주에서 문경까지는....진주에서 대구까지 버스로 가서 대구에서는 기차로 문경으로 가면 될듯 싶었죠..
진주에서 대구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오르니....훈련병때 훈련받던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근처를 지나니....훈련병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그러나 감상도 잠시....구마고속도로가 꽉막히기 시작하는데....허거...이렇게 해선 대구에서 기차를 타기 어렵겠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대구역으로 가며 친절한 택시기사 아저시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구역에
도착, 역사로 뛰어가 시간을 살피니....어라...기차시간이 변경되었다네요....오후 9시발 기차였는데 8시로 한시간 당겨졌다는데.....
우찌 이런일이....이젠 어케하나....대구에서 하룻밤을 자야 하나....머리를 굴려본다...뾰족한 수가 없다. 어쩔수 없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김천으로 가서 김천에서 부모님을 호출하는 수밖에 없겠죠?.....결국 김천에서 한시간 거리인 문경에서
마중나오신 부모님들의 차를 타고 문경 집에 도착....길고 길었던 초보산꾼의 지리산 종주를 그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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