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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네 팔도유람

[창경궁] -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을 추억하며'

 

 

 

 

 

 

# 1. 촌넘, 서울 올라와 하숙집~학교만 오가다 동아리 선배들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가본 서울의 명소였던 창경궁. 

 

 

 

 

 

 

 

# 2. '창경원'이란 이름이 더 익숙했던 촌넘에겐 무척이나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창경궁 첫 방문.

 

 

 

 

 

 

 

# 3. 하지만 그 이후, 시내버스 타고 창경궁 옆을 수없이 오갔으면서도 창경궁과 연이 닿지 않다가...

 

 

 

 

 

 

 

# 4. 봄꽃처럼 파릇파릇했던 젊은 시절의 행복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창경궁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몇 달 전, 어느 월요일에 한번 왔었는데...  '월요일 정기 휴무' 안내문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던 기억이....-_-;;;

 

티켓을 사서 들어가던 예전 시스템과는 달리, 교통카드로 간단하게 바뀐 출입절차 시스템 덕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물 제384호)을 수월하게 통과하여 창경궁에 발걸음을 들입니다.

 

♣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 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는 '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 8)에 재건된 건물이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영조 26)에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에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고 '홍화문 사미도'라는 기록화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 5. 아직은 낯선 선배들인지라 쭈뼛거리며 선배들 뒤를 졸졸 쫓아다닌 기억이 나네요. 

 

 

 

 

 

 

 

# 6. 보물(제386호)로 지정된 돌다리 '옥천교'를 건넙니다. 

 

♣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1484년(성종 15)에 건립된 것으로 '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하여 옥천교라 하였다. 응봉산의 명당수가

창덕궁의 존덕정을 지나 창경궁의 북쪽 춘당지를 거쳐 옥천교로 흘러 남족으로 흘러간다. 궁궐에 남아 있는 다리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리 양쪽 아래에 아치(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의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어 궁궐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7. 창경궁의 중문의 기능을 갖는 명정문(보물 제385호).

 

♣ 창경궁 명정문(明政門)

 명정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긴으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8. 명정문을 지나면 너른 광장인 조정(朝廷) 건너 명정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국보 제226호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으로 명정이란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중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명정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이는 애초에 창경궁이

정치를 위해 지은 궁궐이 아니라 왕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이다. 앞쪽에 펼쳐진 마당,

즉 조정에는 얇고 넙적한 박석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왕궁의 격식을 갖추었다.

정전 마당 양옆에 늘어선 돌들은 품계석이라 하는데, 행사 때 문무백관들이 품계석에 새겨진 각자의 품계에 맞춰

국왕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무신, 좌측에는 문신이 선다. 또한 삼도 가운데 중앙에 있는 어도는 국왕이 이동하는 길이었다.

 

 

 

 

 

 

 

# 9. 명정전과 그 앞마당인 조정.

 

 

 

 

 

 

 

# 10.....

 

 

 

 

 

 

 

# 11. 익숙한 구도.

 

 

 

 

 

 

 

# 12. 명정전과 조정, 그리고 명정문. 명정문 너머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은 서울대학병원입니다. 

 

 

 

 

 

 

 

# 13. 명정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꽤나 가파릅니다.

 

 

 

 

 

 

 

# 14. 명정전 내부 모습. 왕이 앉았던 용상이 있고 그 뒤에 '일월오봉병'이라는 병풍이 세워져 있습니다.

 

♣ 명정전 일월오봉병 - 해와 달은 국왕과 왕비 또는 양과 음을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의 산은 전국의 오악 또는

오행을 상징하여 국왕과 왕비가 전 국토를 잘 다스림을 뜻한다고 한다.

 

 

 

 

 

 

 

# 15. 명정전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  서울대학병원 본관 건물도 보입니다.

 

 

 

 

 

 

 

# 16. TV 사극에서 봤음직한 궁궐 내부.

 

 

 

 

 

 

 

# 17....

 

 

 

 

 

 

# 18. 명정전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남겨보고...

 

 

 

 

 

 

# 19. 조정에서 나와 북쪽의 춘당지 가는 길..

 

 

 

 

 

 

 

# 20.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소나무숲길을 따라갑니다.

 

 

 

 

 

 

 

# 21. 옛 기억이 날듯 말 듯..

 

 

 

 

 

 

 

# 22. '춘당지' 가는 길...

 

 

 

 

 

 

 

# 23. 남도 산수유는 꽃이 진 지 오래인데.. 창경궁의 산수유는 지금이 절정.

 

 

 

 

 

 

 

# 24....

 

 

 

 

 

 

# 25....

 

 

 

 

 

 

# 26. 넓은 오솔길을 지나면...

 

 

 

 

 

 

# 27. '춘당지'라는 넓은 연못이 나타납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다른 장소보다 이곳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아있네요.

 

♣ 창경원 춘당지

 이 연못은 춘당지라 부르는 연못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 한 것이다. 위쪽의 잔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

 

 

 

 

 

 

 

# 28. 일주일 후에 찾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느낌. 

 

 

 

 

 

 

 

# 29. 춘당지 서쪽에 있는 '팔각칠층석탑', 독특하게 생겼다 싶었는데 역시나 명나라에서 만들어진 석탑이네요.

 

♣ 창경원 팔각칠층석탑(보물 제1119호) - 춘당지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팔각칠층석탑이 보인다. 이 탑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마식

탑으로 중국 명나라(1470년) 때 만들어졌다는 글귀가 탑신에 들어있다. 기단은 사각형의 지대석과 팔각의 2중 기단으로 되어 있다. 

 

 

 

 

 

 

 

# 30. 춘당지를 지나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유리 온실이 나타나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이라고 하네요.

 

♣ 창경궁 대온실(국가등록문화재 83호) -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대온실은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들이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31....

 

 

 

 

 

 

 

# 32.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이것까진 이해하겠는데... 동물원은 진짜 너무했네... 십숑색휘들..

 

 

 

 

 

 

 

# 33. 대온실 내부로 들어가 봤습니다.

 

 

 

 

 

 

 

# 34. 음.. 뭐... 평범한 식물원 수준..

 

 

 

 

 

 

 

# 35. 뒤에 분홍빛 꽃의 색이 워낙에 강렬해서 주피사체인 돌단풍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 36. 그래서 다시 담아본 '돌단풍'

 

 

 

 

 

 

 

# 37. 거실에 놔두고 싶고...

 

 

 

 

 

 

 

# 38. 요건 내 책상 위에다 놔두고 싶네...

 

 

 

 

 

 

 

# 39.....

 

 

 

 

 

 

 

# 40. 대온실에서 나와 다시 남쪽으로...

 

 

 

 

 

 

 

# 41....

 

 

 

 

 

 

 

# 42. 성종대왕 태실과 그 제작과 수리 기간을 적은 태실비.

 

조선왕실에서는 왕손이 태어나면 명당지를 찾아 태항아리를 묻어 보존하였다. 그러나 1928년에서 1930년 사이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왕실 가족의 태실 항아리를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다. 이때 경기도 광주에 있던 성종대왕의

태실 석물을 1928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 43.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풍기대.

 

 

 

 

 

 

 

# 44. ♣ 앙부일구 - 세종의 명으로 정초, 정인지 등이 고전을 연구하고, 이천과 장영실이 공경을 감독하여 1434년에

만들었다고 하며, 이후 조선말까지 계속해서 만든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공중용 앙부일구는 2개를 만들어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에 돌로 대를 쌓고 그 위에 설치하여 일반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휴대용 앙부일구로 유명한 것은

1874년에 강건이 납석으로 만든 것이 있다. 4~6㎝ 정도 크기의 직육면체 상자에 반구를 파고 그 안에 영침을 세웠다.

또한 방향을 쉽게 정할 수 있도록 자침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 45. ♣ 풍기대 - 풍기대는 영춘헌과 집복헌 뒤 언덕 위에 세워져 있으며,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세웠던

풍기의 받침대이다. 풍기는 풍신기라고도 한다. 1770년(영조 46년)에 측우기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원래 창덕궁 통제문 안에 설치되었다가 해방 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 46.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합니다. 남산타워도 보이네요.

 

 

 

 

 

 

 

# 47. 살구나무 꽃도 예쁘게 피었고..

 

 

 

 

 

 

 

# 48. 이건 복숭아꽃인가?

 

 

 

 

 

 

 

# 49. 울 동네에선 꽃잎이 떨어진 지 오래인 목련이 창경궁에선 이제 절정이고..

 

 

 

 

 

 

 

# 50. 이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검색해보니 '잡상'이라고 하네요.

 

♣ 잡상 - 잡상이란 기와지붕 위의 추녀마루에 흙으로 빚어 올린 작은 장식 기와이다. 궁궐의 재앙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주로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신들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액운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 51....

 

 

 

 

 

 

 

# 52. 창덕궁의 어느 건물인 듯. 창덕궁은 아직 못 가봤습니다.

 

 

 

 

 

 

 

# 53.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한 '통명전'(보물 제818호)

 

♣ 창경궁 통명전 -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통달하여 밝다'라는 뜻이며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통명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월대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넙적한 박석을 깔았다. 통명전 뒤뜰에는 샘이 있는데 1757(영조 33)에 '샘물이

맵도록 차다'라고 하여 열천(洌泉)이라 하였다. 통명전 서쪽의 연지는 샘이 마당으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1485년(성종 16)에 만들었다.

 

 

 

 

 

 

 

# 54. 창덕궁 후원 입구인 '함양문'. 창경궁과 접해 있는 후원과 창덕궁을 보기 위해 함양문을 통과하려면 다시 티켓을

구매해야 합니다. 창덕궁은 아직 가보질 못했지만 다른 볼일이 있기에 창덕궁은 후일을 기약합니다.

 

 

 

 

 

 

 

# 55. 창경궁 경춘전. 창경궁의 다른 전각과 달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진 못했네요. 이유를 보니 큰 불로 소실된 것을

1834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기 때문인 듯. 

 

♣ 창경궁 경춘전 - 경춘전의 경춘(景春)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뜻이다. 1484년(성종 15) 창건 당시 건립된 침전

건물로 주로 왕대비, 왕비 또는 세자빈 등이 거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년)에 중건되었다. 사도세자는 정조를 낳기 전에 용이 이곳 경춘전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경춘전 동쪽 벽에 용 그림을 그려두었다. 정조는 본인의 탄생을 기념해 경춘전 내부에 '誕生殿(탄생전)'이라 쓴 현판을

걸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 56. 영춘헌과 집복헌

 

♣ 영춘헌과 집복헌 -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영춘헌은 '봄을 맞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 이 건물들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83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에 재건되었다. 영춘헌은 정조가 즉위 후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자 1800년 49세의 나이로 승하한

곳이다. 정조는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하였다.

 

 

 

 

 

 

 

# 57. 수리 중이라 출입이 통제된 통명전(左)과 양화당(右)

 

♣ 양화당(養和堂) - 통명전 옆의 양화당은 '조화로움을 기른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이후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익소은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간병을 받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

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에 재건한 것이다. 

 

 

 

 

 

 

 

# 58....

 

 

 

 

 

 

# 59. 창덕궁과의 경계를 이루는 석축에 피어난 봄꽃들.. 

 

 

 

 

 

 

 

# 60.....

 

 

 

 

 

 

 

# 61. 한복 입고 창경궁을 찾은 외국인들이 종종 눈에 띄더이다. 한복 입고 들어오는 분들은 입장료가 무료라고

어디서 얼핏 들은 것 같은데...

 

 

 

 

 

 

 

# 62. 명정전 뒤편의 전각들..

 

 

 

 

 

 

 

# 63. 태백산, 함백산, 점봉산 등등 강원도 고산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주목'이 이곳 한양 땅 창경궁에 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조금 특이하게 느껴지네요. 하긴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목이 주목이고 학교에 꽤 큰 주목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주목이 딱히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낮은 산에서

볼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니... 참 오묘한 수종입니다. 

 

 

 

 

 

 

 

# 64. 우측의 작은 전각은 '함인정(涵仁亭)'입니다.

 

♣ 함인정 - 함인정의 함인(涵仁)은 '인을 간직한다'라는 뜻이며 함인정 자리에는 1484년 인양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후 함인정은 1633년(인조 11)에 건립되고 1830년(순조 30)에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되었다.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으며, 영조가

문, 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 접견하기도 하였다.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19세기 궁궐 기록화인 '동궐도'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 있다. 함인정 내부의 삼면에는 사계절을 노래한 중국

진나라 화가 고개지의 사시(四時)라는 시가 걸려 있어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에 운치를 더해준다.

 

 

 

 

 

 

 

# 65. 이 주목은 '살아 천년'의 세월을 끝내고 '죽어 천년'의 길로 접어들기 직전인 듯..

 

 

 

 

 

 

 

# 66....

 

 

 

 

 

 

 

# 67. 창경궁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 68. 경복궁만 옛 모습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군요. 창경궁 남쪽, 현재 수목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

조선시대에는 '동궁'자리였다고 하는군요. 

 

 

 

 

 

 

 

# 69.....

 

 

 

 

 

 

 

# 70....

 

 

 

 

 

 

 

# 71. 명정전 남쪽에 자리 잡은 '문정전(文政殿)'

 

♣ 문정전 -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문정(文政)'이란 '문교(文敎)로서 정치를 편다'라는 뜻이다. 국왕이 관리들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고, 현재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정전은 왕실 가족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인 경우도 있었고, 영조의 첫째 왕비인 정성왕후와 철종의 비인 철인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 72. 과거 여러 전각이 있던 자리에 전각 대신 자리 잡은 창경궁의 수목들도 아름답지만 동궐도에 나온 옛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 73. 왠지 이 나무는 기억이 날듯 말 듯..

 

 

 

 

 

 

 

# 74. 추억 보정일 수도 있겠지만 파릇파릇했던 시절에 찾은 창경궁에 대한 좋았던 기억이 지금껏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나....  이런 느낌.... 작년에 찾은 제주도에서 참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 75. 창경궁의 그 어떤 꽃나무보다 아름다웠던 창경궁 제일의 벚나무.

 

 

 

 

 

 

 

# 76.....

 

 

 

 

 

 

 

# 77.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법, 그 벚나무 인기도 많더라..

 

 

 

 

 

 

 

# 78. 다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으로 돌아가는 길... 멀리 북한산 보현봉이 보이고...

 

 

 

 

 

 

 

# 79. 홍화문을 빠져나가기 전에...

 

 

 

 

 

 

 

# 80. 이름 모를 꽃나무 한번 더 담아보고..

 

 

 

 

 

 

 

# 81. 넌 이름이 뭐니?

 

 

 

 

 

 

 

# 82. 너두 이름이 뭐니?

 

 

 

 

 

 

 

# 83. 홍화문을 통과하여 창경궁에서 빠져나오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의 옛 추억에서도 빠져나옵니다. 

 

 

 

 

 

 

 

# 84.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홍화문. 

 

 

 

 

 

 

 

# 85. 창경궁 동쪽에 위치한 서울대학병원으로 올라왔습니다. 음... 건강이 최고~!!! 

 

 

 

 

 

 

 

# 86. 서울은 조선 개국 이래 600년 이상 수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 곳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마주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 서울대학병원에서도 그런 역사적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1908년에 건축되었다는 고풍스러운 대한의원 본관 건물이

인상적이고 그 앞쪽엔 현재 병원 지하층에 자리 잡은 '대한외래'병동의 공사 중에 옛 병동의 흔적이 발견되어

발굴, 보존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 87. 마지막으로, 다른 날, 서울대학병원에서 바라본 창경궁 전경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원본 클릭)

 

참고로 아래 사진에 여러 산이 보이는데.. 좌측에 남산이, 중앙엔 안산, 인왕산, 북악산이,

그리고 제일 우측의 북한산 보현봉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