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 '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혜화동에 볼 일 보러 왔다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오랜만에 조카 데리고 창덕궁으로 향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묘와 동궐(창덕궁+창경궁)을 분리시켰던 종묘관통도로가 90여년만인 지난 2022년 율곡터널이 완공되며 다시 동궐과 종묘가 이어지게 되었다는 역사적인 스토리를 조카에서 설명해 주며 율곡터널을 지나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향합니다.
# 창덕궁 돌담길 옆 쉼터(?)에서 잠시 늦가을 단풍을 즐겨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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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의 궁문으로 돈화문의 남동쪽에 있는 '단봉문(丹鳳門)'
♣ 단봉문 - 정문인 돈화문을 사사롭게 드나들 수 없는 왕족 및 그 친인척, 그리고 궁인들이 주로 출입한 문이었다. 관원들 중에서는 내시부 소속의 중관들이 이용했다. 임금이 잠행에 나설때에도 주로 사용했으며 궁궐에서 사망한 여성들의 시신도 대부분 이 문을 통해 나갔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친국이 열릴 때 죄인이 이 문을 통해 궁안을 들어왔다. 이처럼 단봉문은 구 안에서 여러 사적인 일이나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주로 활용하던 문이었다. 임오군란 때 민비가 난을 피해 궁녀로 변장하고 창덕궁을 빠져나갈 때 이 단봉문으로 나가기도 했다.
#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도착합니다. 돈화문 뒤쪽 회색 빌딩은 현대 계동 사옥.
#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敦化門) - 보물 제383호'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1412년(태종12)에 건립되었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조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되었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입장료 3000냥을 결제하고 창덕궁으로 들어섭니다. 개장 시간 직후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 한가했습니다. (원본 클릭)
# 돈화문에서 동쪽으로 이동..
# 넓은 수로와 수문이 인상적이고..
# 관람제한구역인 이 전각은 '내병조(內兵曹)'
♣ 내병조(內兵曹) - 내병조는 궁궐 안에 있는 병조란 뜻이다. 내병조에서는 대궐 안 각 문의 자물쇠를 관리하고, 임금님이 행차할 때 임금이 탄 가마를 선도하며, 시위나 의장 때 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맡았다. 내병조는 1999년 복원되었으며, 현재 내병조는 창덕궁 관리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슬쩍 들여다본 내병조 내부.
# 내병조에서 진선문 가는 길..
# 진선문 앞 돌다리인 '금천교(錦川橋) - 보물 제1762호'
♣ 금천교(錦川橋) - 금천교는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 위에 설치되어 있다. 창덕궁의 명당수, 즉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가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물가에는 화강석 6~7단을 가지런하게 쌓은 축대를 설치하였고, 여기에 금천교를 설치하여 궐내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태종11)에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는데, 그 후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창덕궁의 중문인 진선문(進善門). '진선(進善)'이란 '훌륭한 인재들을 모으고, 이들을 임금에게 선한 말을 아뢰어 좋은 정치를 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랍니다. 구한말 헐렸다가 1999년에 복원된 창덕궁의 중문.
# 진선문을 지나면 비대칭적인 너른 뜰이 나타납니다.
# 진선문 안 너른 뜰. (원본 클릭)
# 진선문 뒷태.
#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 '인정문(仁政門) - 보물 813호'. '인정(仁政)'은 맹자가 왕도정치를 강조하면서 언급했던 '인정(仁政)'에서 따왔으며 이름 그대로 어진 정치를 바탕으로 훌륭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창덕궁 창건 때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 복구. 하지만 영조 때 화재로 불에 탄 것을 재건해 놓았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며 변형된 것을 1994년에 원형 복원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문이네요.
# 인정문을 지나면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과 당시 여러 가지 공식행사가 개최되던 인정전의 안뜰 조정(朝廷)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본 클릭)
#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 - 국보 제225호'
♣ 인정전(仁政殿) -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 있다. 전등, 커튼, 유리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문 밖 외행각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 창덕궁 인정전 앞 조정의 품계석. 정조 6년에 설치된 것을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철거당했다 해방 후 복원한 것이라고.
# 인정전 앞 항아리(?). 용도는???
# 아... 렌즈 화각이 아주 약간 부족하네요. 렌즈 광각의 화각 18㎜ 가 좁은 편이 아닌데
요즘 핸드폰 초광각의 화각이 대략 13㎜정도이니... 차라리 이런 건 핸폰으로 찍는 편이 낫겠습니다.
# 인정전 내부. 유리창, 커튼, 전구 등등 대한제국 시기 내부를 서양식으로 리모델링(?)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 인정전에서 본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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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브로 창덕궁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있었습니다.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 인정전 동쪽의 작은 문을 통과하여 선정전 방향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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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청기와를 가진 선정전(左)과 희정당(右) (원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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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클릭)
# 창덕궁의 동궁으로 왕세자의 공부방이었던 '성정각(誠正閣)'
# 축대 돌틈에 뿌리를 내린 '주름잎'
# 성정각 동남 측 부속건물엔 '보호성궁(保護聖躬)', '조화어약(調和御藥)'의 문구가 새겨진, 건물에 비해 큰 현판 두 개가 걸려 있습니다. 이거 왠지 소설 동의보감에서 본 문구 같은데... 급하게 찾아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네요.
허준이 상부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 본가에서 가난한 병자들에게 처방을 해준 것이 걸려서 벌칙을 받을 때 읊었던 문구..
'화제어약(和劑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
실제로 두 현판은 일제강점기에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사용할 때 걸었다 추정하고 있네요.
# 봄철 꽃 구경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는 성정각.
문화재청에서 선정한 '궁궐과 조선왕릉의 봄꽃 명소 6선'에 성정각이 포함되었다고... (원본 클릭)
# 성정각의 북동쪽 측면. 성정각의 남면에는 '보춘정(報春亭)'이라 새겨진 현판이, 동면에는 '희우루(喜雨樓)'라 새겨진 현판이 각각 걸려 있습니다.
# 성정각 동북쪽에 위치한 '관물헌' 뒤꼍...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이 인상적입니다.
# 관물헌 내부...
# 창덕궁 성정각.
# 창덕궁 칠분서(左), 삼삼와(中), 승화루(右) (원본 클릭)
♣ 칠분서(七分序) - 중희당과 부속건물인 삼삼와를 연결하는 복도이다. 단순 복도임에도 분합문과 난간을 설치하여 격식을 차렸다.
♣ 삼삼와(三三窩) - 중희당의 부속건물로 과거에는 칠분서를 통해 연결되었다. 서재나 서고, 또는 휴식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 승화루(承華樓) - 삼삼와와 연결된 2층 누각으로 원래 1층은 세자가 읽을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 의신각, 2층은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는 소주합루였다가 헌종 때 낙선재를 지으면서 승화루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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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재 일원.. 뒤쪽으로 서울대학병원의 모습도 보입니다.
낙선재
창덕궁의 주거건물로 전반적으로 양반가 형식을 따랐으나 궁궐 침전 양식을 가미한 집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 부분에 있으며 '궁궐지'에 따라면 헌종 때는 창덕궁이고, 고종 시기에는 창경궁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다시 창덕궁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위치도 창덕궁 주요부와 꽤 떨어져 있고 오히려 현재 창경궁과 훨씬 가깝다.
낙선재라 하면, 낙선재 건물 한 채만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낙선재와 다른 부속건물들을 통틀어 부른다. 좁게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만을 말하며 넓게는 건물들 뒤편의 화계와, 그 위 너머로 있는 상량정, 한정당, 취운정까지 통틀어 낙선재 권역이라고 한다.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이 1989년까지 살았던 곳으로 가장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궁궐전각들 중 그나마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원본 클릭)
# 1989년까지 황실 가족들이 거주했던 낙선재.
#....
# 낙선재 본채.
# 낙선재 본채 뒤로 보이는 '평원루'. 한정당, 취운정과 더불어 낙선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 벽돌식 담장과 기둥이 인상적인 낙선재.
# 낙선재 본채 외에 여러 부속건물이 있습니다.
# 일단 좌측 문으로...
# 좌측 문으로 들어선 곳은...
# 낙선재의 안채인 '석복헌(錫福軒)'입니다.
# 석복헌의 동쪽에 있는 건물은 '수강재(壽康齋)'. 낙선재 권역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종의 딸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돌아온 뒤 1989년 서거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 낙선재와 창경궁의 경계를 이루는 담장. 담장 뒤편은 창경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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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재 뒷편 언덕에 있는 한정당, 평원루, 취운정은 비공개구역이라 가까이에서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 낙선재의 부속건물... 창고인가?
# 낙선재 '화계' 보러 가는 길..
# 건물 뒤편에 계단 정원인 화계가 있습니다.
# 화계는 꽃이 절정일 봄에 와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듯.
# 풍광이 굉장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화계. 전돌로 쌓고 장식한 문과 담장, 굴뚝 괴석, 석지 등을 세웠다고..
# 낙선재 본채 내부.
# 낙선재 본채 뒤편의 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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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재 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한정당, 평원루, 취운정에 올라가 볼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쉽습니다.
# 낙선재에서 돌아 나오는 길, 희정당으로 향합니다.
# 좌측이 대조전으로 들어서는 선평문, 우측이 희정당.
# 선평문 뒤로 대조전이 보입니다.
# 희정당 내부의 서양식 장식물이 인상적입니다.
# 희정당 내부의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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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평문을 지나 대조전(大造殿)에 들어섰습니다.
♣ 대조전(大造殿) - 큰 공업을 이룬다는 뜻으로 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는 침전이기도 하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이건 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는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했다.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 주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개조되었으며, 왕실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대조전 뒤편에 대조전의 부속 전각으로 대조전과는 한 몸체로 붙어 있는 전각이 있으니 '함원전(含元殿)'입니다.
# 대조전 뒤편의 화계.
# 화계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문이 있으나 낙선재 뒷편 언덕과 마찬가지로 비공개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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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도 볼만한데.. 역시나 궁궐은 화계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봄에 찾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네요.
# 창덕궁의 전각들 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올린 '선정전'.
♣ 선정전 -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 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뒤편의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순조 이후에는 이곳을 혼전(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선정전의 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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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전의 용상.
# 돌아 나오며 다시 한번 인정전을 담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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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음을 알려주는 석판 뒤로 궁궐 내의 중앙관서인 '궐내각사(闕內各司)' 자리하고 있습니다. 궐내각사는.. 시간관계상 패스... 한 게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네요.
♣ 궐내각사(闕內各司) - 궐내각사는 왕과 왕실을 보좌하는 궐내 관청으로 관청은 대부분 궐 밖에 있었지만,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 안에 세운 관청들을 궐내각사라고 불렀다. 인정전 서쪽 지역에는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로 동편에 약방,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서편에 내각(규장각), 봉모당, 대유재, 소유재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근위 관청이며, 여러 부서가 밀집되어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규장각, 대유재, 소유재는 단순한 도서관으로 기능이 변했다가, 그나마도 소장 도서들을 경성제국대한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규장각과 봉모당 등 모든 궁궐전각들이 헐리고 도로와 잔디밭으로 변해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2004년에 걸쳐 복원된 것이다.
-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 자료
# 근래 서울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서울에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는 거.. 더군다나 이곳 창덕궁은 서울의 대표관광지이니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느껴질 정도..
# 창덕궁을 떠나기 아쉬워 카메라 연신 들이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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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화문 뒤편 좌측에 여덟 그루의 멋들어진 나무가 있으니 천년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된 '창덕궁 회화나무 군(群)'이라고.
# 돈화문을 나오며 창덕궁과는 안녕... 언제 다시 찾을 날이 올는지...
# 창경궁 돌담길을 지나 다시 혜화동을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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